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유족회, "과거사법 개정하라" 기자회견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유족회, "과거사법 개정하라" 기자회견
  • 이장원 기자
  • 승인 2018.11.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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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속한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속한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 회원 70여명은 23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조속한 과거사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과거사 사건 피해·생존자들과 시민사회 단체가 과거 청산을 위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인 진화위법 등 국회에 계류된 7개의 과거사 관련법을 하루빨리 개정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과거사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 전문

 

우리는 지난 이명박근혜정권 시기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지만 오늘 또 다시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작년 11월에 시작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국회 앞 노숙농성이 1년을 넘어섰다.

이들 생존자들은 그동안 단식과 전국순례 등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려왔고, 1년 전 이 곳 국회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살을 에는 듯한 겨울 한파와 한낮 직사로 내리 쬐는 여름 더위와 맞서 싸우며 과거사법 통과를 기다려 왔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족들의 처지는 어떤가. 보도연맹과 부역혐의, 미국 폭격에 의해 부모형제를 잃은 유족들은 노구를 이끌고 1년 가까이 국회 앞 1인 시위를 이어오며 진실화해위원회 재가동을 요구하여 왔다.

19대 국회 당시에는 이낙연 의원(현 국무총리)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등을 위한 기본법안을 비롯하여 진화위법 개정안 등 총 13개 법안이 발의되었다. 그 법안들이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되었을 때, 피해자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과거청산의 의지가 없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하에서 과거청산이 다시 시작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정부 탓을 하며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외로운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20대 국회에서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 일부개정 법률안’(이하 진화위법) 7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계류 중이다. 19대 국회와 20대 국회 사이에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달라는 촛불혁명이 있었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문제 해결100대 국정과제의 세 번째로 꼽았을 만큼 과거청산 의지가 높아 보였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금방이라도 진화위법이 통과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진화위법이 별다른 쟁점도 없이 3년째 국회를 떠돌고 있다. 이번 주에 있을 네 번의 법안 심사소위에서는 안건에서 누락되어 진화위법은 아예 심사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역사정의실천연대는 70년을 기다려온 유가족들의 절박함, 1년이 넘는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분들의 노숙농성 등 극단적인 상황에 처해진 현재의 과거청산 국면을 설명하며 즉각적인 법안 심사를 요구했다. 하지만 집권여당의 답변은 한결같다. 기다리라는 것이다.

과거청산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던 문재인정부와 여대야소의 국회에서 진화위법이 법안 심사 소위에 안건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과거청산의 발목을 잡아온 자유한국당 탓을 해야 하는가. 진실과 정의, 피해자들의 눈물을 끝내 외면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워진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에게 이제라도 역사의 엄중한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하는가.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달라는 피해자들의 호소를 골치 아픈 민원쯤으로 취급하고 있는 20대 국회에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는 그 동안 꾹꾹 눌러왔던 실망감을 더 이상은 감출 수 없다. 이제는 정부와 집권여당이 책임 있는 대답을 해야 한다.

한국의 과거청산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시작되어 2000년부터 국가기구에 의한 분야별 과거청산작업으로 진행되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의문사특별법, 4·3특별법, 진화위법 등의 제정을 통해 과거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시기 과거사 관련 국가기구들이 거둔 의미 있는 성과들은 역사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 주도의 과거청산이 많은 한계와 과제를 남겼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많은 사건들이 여전히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 있다. 백만 명 넘게 희생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사건 중 진화위가 확인한 희생자는 16,500여 명에 불과하다. ‘국방경비법’,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 ‘국가보안법’, ‘반공법등 반인권적 법률에 의한 피해자들의 규모와 현황은 파악조차 되어 있지 않다. 간첩조작 사건, 납북어부사건, 의문사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 선감학원사건 등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들 역시 진실규명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1기 진화위는 일부 진상규명을 하였음에도 과거사재단 설립 등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아무런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진상규명 전과 후가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국가기구가 어렵게 밝혀낸 진실이 부인되거나 책임지지 않는 사례들 또한 속출했다. 의문사위가 타살로 인정한 허원근 사건은 그 후 십여 년 간의 조사와 법정 공방 끝에 사건의 의혹들이 원점으로 되돌려졌다. 국가가 인혁당 사건의 유족을 대상으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을 하여 유족들을 회생불능의 채무자로 전락시킨 것도 과거청산의 성과를 뒤집은 사례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를 고도의 통치행위로 판결하고, 국가배상소송의 소멸시효 기간을 정해 배상책임을 회피하는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진 역사부인과 책임회피는 피해자들에게 또 한 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이는 모두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후과다.

과거사의 잘못이 바로잡히지 않으면 폭력과 야만의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을 우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정부 하에서도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국회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청산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게 한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면서 기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사의 잘못을 반복하며 몰락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문재인 정부와 20대 국회가 밟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진화위법 개정안을 외면하고 있는 20대 국회와 과거청산의 약속을 망각한 문재인정부를 강력히 규탄하며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하나, 국회와 정부는 진화위법 개정을 통해 과거사의 진상규명, 배상 및 명예회복을 위한 후속조치를 실시하는 한편,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즉각 마련하라.

하나, 국가폭력에 희생된 유해들이 아직도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산천에 묻혀 있다. 국회와 정부는 유해발굴과 더불어 추모, 위령사업을 실시하라.

하나, 과거사는 기록되고 남겨져야 한다. ·장기적 위령 추모사업 등 명예회복과 학술연구문화사업, 그리고 과거사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진실화해 재단을 설립하라.

과거청산 노력이 한 세대를 경과하는 현 시점은 그 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되돌아보면서 과거청산의 목표와 방향을 새롭게 설정해야 할 때다. 진실규명을 넘어 책임자를 처벌하고 권력기관을 문명화하는 정의가 실현되는 과거청산, 피해자의 억울함을 달래주는 것을 넘어 우리 자신과 후손들의 생명권과 인권이 보장되는 과거청산을 모색해야만 한다.

과거청산의 한계를 반복할 것인가, 미래지향적인 과거청산으로 나아갈 것인가. 우리는 지금 역사의 전환점에 서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단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그 책임은 온전히 20대 국회와 문재인정부에 있음을 다시 한 번 밝힌다.

잘못된 역사의 반복을 멈추기 위해 20대 국회는 진화위법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은 노무현정부로부터 이양된 포괄적 과거청산의 과제를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된다. 20대 국회는 과거사법을 즉각 개정하고,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

 

20181123

 

역사정의실천연대 과거사특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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