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뽀】한국전쟁이 낳은 비극 “69년 만에 한 없이 울었습니다”
【현장르뽀】한국전쟁이 낳은 비극 “69년 만에 한 없이 울었습니다”
  • 인재환 기자
  • 승인 2019.03.13 2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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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찬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 충북회장

“한국전쟁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충북 보은군 아곡리 현장”

아곡리는 6·25전쟁 직후인 19507월 초 보도연맹원 150여명이 군·경에 의해 무고하게 학살된 뒤 집단 매장당한 곳이다.

충북 보은군 아곡리 유해발굴 현장 모습.
▲충북 보은군 아곡리 유해발굴 현장 모습.

노구를 이끌고 이곳 유해발굴 현장을 5일째 지키고 있는 백발노인이 바로 이세찬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충북회장이다.

그는 지난 8일 유해발굴 개토제에 참석해 유해 앞에 술잔을 올리면서 69년 동안 참았던 눈물을 끝내 참지 못하고 오열했다.

이세찬 회장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7월 초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회상했다.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위치한 '미원초등학교' 복도.
▲충북 청원군 미원면에 위치한 '미원초등학교' 교실.

당시 15세였던 저는 청주 미원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교실 문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칼빈총을 메고 있는 군인이 왜 왔어 임마하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저는 군인에게 우리아버지 이문구를 만나러 왔다며 꼭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애원했다. 어렵사리 만난 아버지는 멕고 모자와 쌈지를 주며 갖고 올라 가거라고 했다. 이 말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다음날 미원초등학교로 다시 아버지를 만나러 갔지만, 교실은 텅 비었고 아버지를 실은 트럭 두 대는 보은군 아곡리로 출발한 상태였다.

아버지는 그렇게 아곡리에서 군경에 의해 무고하게 학살당했고, “그 슬픔은 하루도 빠짐없이 69년째 제 가슴에 고스란히 쌓여 있다

이세찬 회장의 아버지 이문구씨는 보도연맹원이기는 커녕 오히려 우익의 대표단체라고 할 수 있는 대한청년단의 단장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보도연맹원으로 둔갑해 다른 보도연맹원들과 함께 미원초등학교에 감금됐다.

이렇듯 보도연맹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이들이 국가가 저지른 잘못으로 아직도 97%가 차디찬 지하에 어둠속에서 이름 모르게 잠들어 있다.

이세찬 회장은 2014년부터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충북유족회를 결성하는데 참여해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2014년 아곡리에 포크레인을 동원해 유해가 매장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충북도청에 유해발굴을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도청의 답변은 묵묵부답.

2018년 하반기에는 국회를 1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국회의원을 만나 과거사법 개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아직까지 법은 국회에서 2년째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8일 오전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충북도에서 유해발굴 지원 자금을 편성해 아곡리 유해발굴을 시작했다. 아버지 돌아가신 지 69년 만에 발굴을 하는 것이고, 2014년 유해매장을 공식적으로 확인한지 5년만이다.

아들 이세찬은 그렇게 발굴 5일차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현장을 지키고 있다.

발굴 현장은 그야말로 유해가 겹겹이 포개져있고 널브러져있어서 그 당시 참혹함을 엿볼 수 있었다.

어느 게 누구 뼈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시간이 69년 전으로 멈춰진 상태의 유품도 숫하게 나오고 있다. 흰 고무신부터 도장, 손거울, 실탄, 탄피, 담배대, 단추, 버클, 팬티고무줄, 심지어 시계까지 나오고 있다.

이세찬 회장은 전에는 유해가 묻힌 곳을 알지 못했다. 이 장소를 동네 주민 등 증인에 의해 알게 됐다발굴되는 유해를 보니 울화가 치민다. 복받치는 감정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이 유해가 우리 아버지인가 하는 마음에 눈을 크게 뜨고 기도하면서 지켜보고 있다고 토로 했다.

아곡리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굴된 이름모를 유해 모습.
▲아곡리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굴된 이름모를 유해 모습.

그러면서 정부차원에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유족들에게 유해가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차원에서 특별법을 제정해서 명예도 회복시켜주고 유골수습과 보상도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기뿐만 아니라 전국에 억울하게 희생되신 분들의 유해를 발굴해서 유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밤잠을 설치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이세찬 회장은 유해발굴이 끝나는 16일까지 계속 자리를 지키겠다고 했다.

이세찬 충북 유족회장이 복지TV인터뷰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세찬 충북 유족회장이 복지TV인터뷰서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노구를 이끌고 유해발굴을 지켜보는 그의 뒷모습 속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국민을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하는 일은 지극히 상식인데 국가는 뒷짐을 지고 있으니 이 나라의 정의는 살아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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