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Spotlight’ 싱어송라이터 하동기의 열정과 노래 이야기
‘K- Spotlight’ 싱어송라이터 하동기의 열정과 노래 이야기
  • 신한국 기자
  • 승인 2024.01.21 1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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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에서부터 가수, 세션 활동까지, 음악의 폭을 넓힌 멀티 플레이어의 여정’
싱어송라이터 가수 하동기 프로필
싱어송라이터 가수 하동기 프로필

 

한두 발자국을 따라가면서 마음을 울리는 음악과 다양한 장르에서의 연주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세션 활동까지 손꼽히는 멀티 플레이어, 가수 하동기의 음악 이야기.

 

음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당시 반장으로 활동하던데, 반에는 싸움을 잘하는 ''이라 불리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통기타를 치며 당시 유행했던 노래인 '사랑의 슬픔'을 부르는데, 그 순간 학교에서 싸움을 잘하면서 노래도 잘 부르는 멋진 친구에게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공부만 잘하던 나로서는 그를 통해 새로운 동경의 대상이 되었죠. 어머니의 도움으로 통기타를 사서 학원에 다니며 연습을 시작하고, 3 대학 입시 전까지는 벗님들의 콘서트를 놓치지 않고 참석하며 음악의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최종적으로 2004년에는 이치현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이 직업이 되기까지 많은 일 들이 있었겠어요?

음악이 직업이 되기까지의 여정은 복잡하고 도전적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으로서 음악이 직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좋은 미래를 위해 대원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거기에서 꼴등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1 때 나만큼 기타를 치는 친구가 없어서인지, 겁 없이 밴드를 조직하고 보컬 및 기타를 맡게 되며 학교에서 공연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타를 치며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음악 세계를 동경하며 6개월 동안 굶은 저녁식사값으로 산 일렉기타를 가지고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대학 진학을 결심하고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경희대 일어일문학과를 후기로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안에서는 작은 밴드를 이끌며 활동하다가 군 입대 후 문선대에서 기타 연주자로 차출되었습니다.

 

당시 유준상 씨와 맨발의 청춘을 부른 벅도 문선대에 있었는데, 그 당시는 모두 무명이었지만 음악, 연기, 진행에 열정을 가진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군대 제대 직후 나이트클럽에서 첫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지만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않아 복학을 1년 더 미루면서 나이트클럽에서 연습하고 돈을 벌었습니다. 이 경험들이 나의 음악적인 성장과 여정을 형성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가수 하동기 프로필
싱어송라이터 가수 하동기 프로필

 

어떤 밴드들을 했었는지요?

94년부터 나이트클럽 밴드에서 음악을 해 오다 2000년도부터 미사리에서 음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언더그라운드에서 잘 나간다는 팀에도 있었고 연인한승기 밴드에서 5, 이치현 형님의 밴드에서 십수 년을 연주했었고, 현재는 김치찌개 라이브로 유명한 우종민 밴드, 그리고 이란 노래로 미사리를 주름잡던 권용욱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무대 혹은 공연이 있었는지요?

가수로 한 공연, 행사, 또 세션으로 함께 한 공연, 행사는 정말 무수히도 많지만 그래도 코로나 바로 전 2018년도 12월 첫 단독 콘서트가 아닐까 싶어요. 혼자서 진행과 노래, 연주를 모두 해내야 하는 설레고 벅차지만 부담도 너무나 컸던 공연이었죠, 지나고 나서지만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어떻게 노래교실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2013년은 정말 힘든 한 해였죠. 노래와 연주, 편곡까지 하는데도 가정을 이끌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선배 우종민 형이 같이 작업실을 만들어 함께 작업해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죠.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냉큼 오케이를 하고 먼저 나서서 작업실을 완성도하고. 덕분에 작업도 많이 하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습니다. 이듬해 또 하나의 큰 수확은 노래교실의 시작이었습니다.

 

우종민 형이 사정상 못하게 된 노래교실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하겠다고 했던 나의 객기에 감사하죠, 흔히들 노래교실은 노래를 배우는 곳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니란 걸 깨닫는데 두 달 여가 걸렸습니다. 노래교실은 단지 즐거운 곳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코로나로 두 곳이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서울 다섯 지역에서 회원님들과 함께 웃음과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싱어송라이터 가수 하동기, 노래교실에서 회원님들과 함께,
싱어송라이터 가수 하동기, 노래교실에서 회원님들과 함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곡 혹은 앨범?

음반 작업을 하면서 항상 아쉬웠던 부분이 엔지니어와의 마찰입니다. 요구하는 대로 잘 해주지 않는 관행 때문에 직접 녹음실을 만들기로 했죠, 후배의 조언을 빌어 녹음 장비, 녹음실 공사, 음반 작업 등등을 진행했고 음반 작업을 하는 누구나 느끼는 거겠지만 만들 때는 대박 나는 줄 알죠, 4년 정도 녹음실을 운영했는데 개인 음반 두 장과 녹음실이 같이 망했죠. 잃은 것도 많았지만 배운 것도 참 많았습니다. 그 덕에 지금의 여러 지식들이 생겼으리라. 인생이 다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 같아요.

 

코로나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말 힘들었다는 시기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나름 사치를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퇴직금 없는 직업에 대비해 노후대책을 충실히 해 놓은 터라 평소 대비 10%도 안되는 수입으로도 24개월여를 버틸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빚은 안 지고 넘겼죠. 장가 잘 간 덕에 바가지 안 긁히고 오로지 연습에 충실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바꾸니 오히려 새로운 충전을 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연주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뭐든 한 가지를 오래도록 해 본 사람은 잘 알 것입니다. 보이는 시간보다 보이기까지의 준비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를! 어느 정도의 수준까지 가면 그 섭리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럼에도 끝나지 않는 일련의 과정들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 건 숙명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연주하는 사람보다 노래하는 사람만이 훨씬 더 인정받는 주목 받는 풍토가 좀 불만스럽긴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instrument 차트가 생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노래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는지요?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가수가 아닌가 싶어요. K-Pop의 수준은 전 세계 최고가 되었고 자라나는 어린 친구들의 수준은 이미 우리가 아는 프로의 수준을 넘나들죠. 내 나이도 이제 어느 정도 들어가니 적어도 내가 내는 소리에는 부끄럽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담배도 끊었고 일주일에 적어도 4일 이상은 꼭 운동을 하려고 합니다.

 

어떤 음악들을 즐겨들었나?

예전에는 벗님들만 좋아했죠. 그러다 보니 코러스, 화음이 좋은 밴드들이 좋아졌습니다. 그 후에는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는 뮤지션을 좋아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정말 여러 장르의 음악을 접하다 보니 모든 음악이 서로 다른 거지 어떤 음악이 더 낫고 어떤 음악은 못하다는 건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 여러 장르의 음악을 가리지 않고 하게 되고 할 수 있게 된 건 분명 행운이고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싱어송라이터 가수 하동기 스튜디오에서 작업중
싱어송라이터 가수 하동기 스튜디오에서 작업중

 

음악을 하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기타리스트로 가수로 작, 편곡가로 그리고 노래강사까지, 참 뭐든 그렇겠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든 지금에서야 기타에 대해 음악에 대해 눈곱만큼 알 것 같은데 어찌 그리 수십 년을 건방과 거만을 내색하며 살아왔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 말도 이제서야 와닿네요. 정말 많은 곡들을 카피하고 연주하고 연습하고 노래하고 작곡하고 편곡하고. 모든 것이 내 안의 큰 밀알들로 자리 잡았으리라. 그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며 항상 노력하고 또 노력할 수 있는 내 모습에 감사하며 누구나 알고 불리는 그런 아름다운 곡들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또 책상 위 오선지 앞에 않습니다.

 

하동기의 음악 이야기를 통해 그의 열정과 전념, 끊임없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가 어려움을 극복하며 쌓아온 다양한 경험과 지식은 그의 음악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에서도 그의 음악이 더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싱어송라이터 하동기, 미래의 음악 여정이 더욱 풍요로워지길 기원합니다.

 

'K-Spotlight'와 함께 아티스트의 세계, 다채로운 예술 문화를 계속해서 재 조명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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